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기 한 달 전,
7년 간 일한 회사에서 그만 나오라는 통보 전화.
실제로 자주 벌어지는 일입니다.
합계출산률 0명 대.
심각한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과 육아를 장려하는 다양한 제도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갈 길은 먼데요.
직장 엄마와 아빠가 부딪히는 뼈아픈 현실입니다.
김유림기자와 제가 이어서 보도합니다.
[리포트]
[오전 7시 30분]
버스와 지하철을 두 번 갈아 타야 하는 출근길.
임신 7개월의 기자에겐 만만치 않은 도전입니다.
임산부 배려석이 있지만 깊은 잠에 빠진 젊은 여성이 앉아있습니다.
가방에 '임산부 먼저' 뱃지가 달려 있지만 좌석에 앉은 승객들은 애써 외면합니다.
[현장음]
"다들 주무시느라 핸드폰 보시느라고, 사실 다 몰라요. 아침엔 피곤하니까.(웃음)"
또 다른 칸. 핑크 좌석에 앉은 승객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만 볼 뿐.
1시간 넘게 서있다보니 다리가 저려오고 허리도 끊어질 듯 합니다.
[김유림 / 기자]
"저번엔 쥐가 나서 못 내린 적도 있어요. 정거장 지나쳐서."
배려석이 도입된지 6년이 됐지만 임산부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냉정합니다.
[김하영 / 36/ 임신 9개월]
"지하철 같은 경우에는 워낙 어르신이 많으니까 왠지 '내가 앉아있으면 (임산부인걸) 몰라보면 어떡하지'."
[배정을 / 38/ 임신 10개월]
"남성 분들도 많이 앉아 계시더라고요. 다른 자리도 많은데 굳이 핑크색 의자에 앉아야되나."
임신 기간 중 유산, 조산 위험을 막기 위해 근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도 유명무실합니다.
2014년 도입됐지만 실제로 적용하는 사업장은 28%에 그쳤습니다.
지난 1월부터 육아휴직 중인 이 모 씨.
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지만,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.
[이 씨 / 육아휴직 중]
"출산휴가는 해줄 테니까 끝나고 나면 그만둬라. 이거죠. 실업급여는 받게 해줄 테니까."
고용노동부에 민원을 접수한 뒤 육아휴직은 얻을 수 있었지만 돌아갈 일터는 없습니다.
[이 씨 / 육아휴직자]
"부담은 많이 있죠. 신랑 혼자 다 벌어야 되니까. 대출금 혼자 갚아야 되고."
정부는 저출산 문제 극복을 위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.
실제로 육아휴직자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, 상당수 중소기업에서는 여전히 딴 나라 이야기입니다.
300인 이상 사업체의 93%가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데 반해, 10인 미만 소규모 기업은 33%에 그칩니다.
육아휴직을 얻었던 7년 차 직장인 A씨는 복직 한 달을 앞두고 회사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.
[A씨 / 육아휴직 후 권고사직]
"나름 제 20대와 30대를 바쳐가지고 일했던 회사인데 너 필요 없으니까 나가 이런 식이니까."
사직 권고였지만 사실상 해고통지였습니다.
[A씨 / 육아휴직 후 권고사직]
"어린이집도 그 당시에는 국립이 됐었는데 저희 친정 (근처 어린이집)으로 옮기려고 그것도 마다하고 복직준비를 했었던 건데 그렇게 된 거죠."
같은 회사 첫 남성 육아휴직자인 B씨도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.
[B 씨 / 육아휴직 후 권고사직]
"'육아휴직 남자가 물을 흐렸다.' 이렇게 표현을 하더라고요."
"회사에서 3개월 위로금을 주고, 실업급여 받을 수 있게 해줄 테니 그렇게 정리해줘라."
두 달의 구직활동 끝에 새 직장을 얻었지만 맘고생에 체중이 12kg이나 빠졌습니다.
[B 씨 / 육아휴직 후 권고사직]
"생계잖아요. 되게 많이 속상했어요. 지금도 속상해요. 평생 가슴에 한이 될 거 같아요. 진짜로."
2년 전 가족친화기업 인증까지 받았던 이 회사.
사직권고는 없었다고 주장합니다.
['ㄷ'업체 관계자]
"공식적인 입장은 그런 적이 없고 거기에 합당한 본인의 의사에 의해서 처리가 됐고…"
하지만 취재진이 입수한 녹음파일의 내용은 좀 다릅니다.
['ㄷ'업체 관계자]
"일단은 뭐 TO는 없는 걸로 통보를 받고 그런 상태로 있다."
"세 명째를 내 손으로 이게 해야 되는지도 솔직히 정말 자괴감이 든다."
육아휴직을 보장하지 않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줄 경우 처벌규정이 있지만 실질적인 적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.
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여전히 위반 사례가 빈발하고 있습니다.
[김승희 / 자유한국당 의원]
"제도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실제 활용이 안 되고 있기 때문에. '너 없는 공백 시간에 우리가 굉장히 희생당하고 있어.' 이걸 강요당하고 있는 분위기죠."
채널A 뉴스 정하니 입니다.